언어 사이에서: 영어학원 원장 엄마의 바이링구얼 육아 이야기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뿌리입니다. 두 언어를 오가며 아이를 키운다는 건 마치 두 강이 합류하는 지점을 지키는 것과 같아요. 어느 날은 영어가, 또 어떤 날은 한국어가 더 거세게 밀려오기도 하지만, 두 물줄기가 만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저는 한국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했던 원장이자, 동시에 미국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전문가와 엄마라는 두 역할이 교차하는 이 여정에서 제가 배운 것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1. 한국에서 만든 “작은 영어 섬”

한국에 살 때, 우리 집은 영어의 바다 속 작은 섬 같았습니다.

“아빠와는 영어, 엄마와는 한국어.”

이 단순한 규칙을 지키기 위해 가족 모두가 애를 썼죠.

아이들이 아빠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고, 집에는 영어책과 영어환경을 꾸준히 채워 넣었습니다. 영어 독서학원을 운영한 것도 아이들에게 자연스러운 영어 환경을 주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2. 미국에 와서 맞이한 반대 풍경

하지만 미국으로 이주한 순간, 상황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이제는 영어가 압도적으로 밀려들고, 한국어가 작은 섬이 되어 버린 거죠.

한국어 전집을 들여오고, 의식적으로 한국어를 쓰려 노력했지만 아이들의 한국어는 점점 약해졌습니다. 둘째가 한글을 읽던 기억조차 희미해지는 모습을 보며, 저는 교육자보다 엄마로서 더 큰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3. 강압 대신 애정으로

주변에서는 종종 말합니다.

“등짝 스매싱을 해서라도 가르쳐야지.”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강제와 두려움으로 배운 언어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아이에게 언어는 사랑과 기억이 담긴 도구여야 합니다. 저는 인내와 애정을 선택했습니다.

4. 전문가와 엄마 사이의 갈등

전문가로서 저는 이론을 알고 있습니다.

엄마로서 저는 현실의 무력감을 압니다.

미국 정착 과정에서 생존과 적응이 더 시급했던 날들, 언어 교육은 뒷전으로 밀렸고 저는 자책했습니다.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극은 부모라면 누구나 겪는 현실이겠지요.

5. 나의 방식: 자연스러움 속의 의도

결국 제가 붙잡은 원칙은 단순합니다.

“자연스럽게, 그러나 꾸준히.”

  • 아이들과 한국어로 대화하기
  • 어려운 개념은 영어로 먼저 이해시킨 뒤 다시 한국어로 풀어주기
  • 일상 속에서 두 언어의 다리를 놓아주는 작은 반복

이것이 제 방식입니다. 아이들이 당장 완벽한 이중언어를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언어는 씨앗과 같아, 토양만 잘 가꿔주면 아이들 스스로 필요한 시기에 움트리라 믿습니다.

6. 완벽함보다 중요한 것

결국 중요한 건 완벽한 언어 구사가 아닙니다.

영어로 아빠의 사랑을, 한국어로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아이들이 두 언어 사이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고, 두 문화 속에서 균형을 이루어 간다면 그게 바로 바이링구얼 육아의 진정한 성공 아닐까요?

👉 언어는 흘러가는 강물과 같습니다. 오늘은 한국어가 약해 보일 수 있고, 내일은 영어가 더 거세게 흘러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흐름 속에서 아이가 자신만의 항해를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그것이 제가 선택한 바이링구얼 육아의 길이고, 그 안에서 발견한 작은 희망입니다.